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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신앙고백/설교말씀 정리

삶의 소망 I 로마서 5:12-16

by 띵진쓰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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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어떤 삶을 소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경제적으로더 나은 삶을, 또누구는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직장을, 또 어떤 사람은 넓은 집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소망과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이룬 공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의롭게 된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유익은 모두 그리스도로 인해 가능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 그 일을 가능케 한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무한한지 본문 말씀을 통해 설명합니다.

 

1. 죄인으로부터 시작 - 바울도 사울의 신분이었을 때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오로지 율법만 강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람들을 잡으러 가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임해 변화된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이 자기의 이름보다 먼저 앞선 이름인 아담을 말했습니다. 아담은 태초의 사람이며 에덴동산에 있었는데 인류의 조상으로 인간을 대표합니다. 바울은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인 창세기 3장의 선악과를 먹은 사건을 이야기 했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와와 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결과적으로 뱀의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하와는 선악과를 먹게 됐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면 그들이 왜 죄를 지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 먹음직도,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그 마음에 죽을까 하노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된 것이 성경에 쓰여있습니다. 

 

말씀의 왜곡의 시작점은 욕심입니다. 그 욕심으로 인해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와는 왜 먹고 아담에게 주었을까? 그리고 왜 아담은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을까?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시며 선악과를 먹지 말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고, 그 산 증인인 하와가 있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들고 온 반드시 죽었어야 할 하와를 보며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게 되고 단 한 차례의 망설임도 없이 선악과를 먹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아담으로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에게 죄를 계속 낳고 낳게 됐습니다. 죄는 욕심에서부터 시작됐고 욕심에서부터 난 죄는 인간을 타락시키게 됐습니다. 에덴동산의 사건,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평생 일하며 농사를 짓고 아이를 낳는 출산의 고통과 죽음까지 연결되는 죄의 고리를 낳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지만 성경은 다르게 봅니다. 죽음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완전하고 영원히 정복될 마지막 원수로 봅니다. 그러므로 재림 전까지 사망을 피할 수 없는 존재로 봅니다.

 

14절은 모든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아담에게 속하나 믿음으로 새롭게 된 자는 예수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아담으로 인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게 됐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원수이자, 궁극적인 원수입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선언합니다. 죽음안에 있는 죄인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복음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소망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천국 소망에 대한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셔서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사랑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지가의 사랑으로 죄와 사망가운데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고 구원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두 인물,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가장 잘 알려주는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소망이자 구원의 핵심입니다.

 

2.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삶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우리를, 창조물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주셔서 그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영생의 소망을 천국에서만 누려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주신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이 땅에서 영생을 위해서 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인 그 분을 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담은 죄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확연히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에게 죄가 번지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가 돼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됐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넘치는 은혜가 우리 안에 있어서 진정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게 됐습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죄의 유혹을 이기기 힘든 우리에게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가 모든 인간을 정죄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예수님을 믿어 그 분과 함께 하는 삶은 모두 의와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 전에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망이 사람들을 압제하며 왕노릇 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생명으로 왕노릇하게 됐습니다. 

 

또한 바울은 무수한 죄가 범해졌어도 구속의 은혜가 모든 것을 덮을 만큼 풍성하고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와 사망을 극복했으며 은혜 안에서 영생과 소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소망 있으며 믿는 우리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아담이 불러 온 결과를 다 없애버리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것입니다.영영 죽을 죄인인 우리의 인생을 새로운 인생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미국의 로또인 파워볼은 당첨금액이 큽니다. 최근에 당첨금액이 크게 쌓여 1조가 훨씬 넘어가는 금액이 쌓였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3명이 당첨돼 1인당 4천억이 넘는 금액을 수령했는데 그 중 한 명은 당첨금액을 받은 날 마약파티를 벌이다 사망하고 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삶의 소망을 어디다 두고 사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 허황된 꿈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다른 결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두 사람을 비교하며 이야기합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선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저것만 못 먹게 했을까? 라는 내재된 생각과 욕심이 하와에게 전이되고 뱀의 유혹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내 육신의 정욕으로 갖고 싶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면 안되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소망이 돼야 합니다. 내 육신과 정욕으로 바라본다면 아담과 하와의 시선으로 선악과를 바라보는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바라본다면 영생의 삶,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 삶의 절대적인 반전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의 삶에서 완전히 달라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며 그것을 외치며 사명삼아 전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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