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6집 리패키지 음반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으로 차트를 터뜨린 기념으로 써보는 글입니다.
이 음반의 14곡 중에서 윤하가 단독작사한 곡은 8곡, 공동작사까지 합치면 11곡이나 되는데,
가사를 보면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소재를 가져와 쓴 곡들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1. 오르트구름
2. 살별
3. 6년 230일
4. P.R.R.W.
5. 사건의 지평선
이렇게 다섯 곡에 들어있는 과학적 요소들을 간단히 설명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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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하기 전에
사실은 과학적 요소가 담겨있는 (혹은 그런 분위기를 내는) 곡은 몇개 더 있습니다.
'물의 여행'에서는 물의 순환을 소재로 하고 있고, 'Black hole'에서는 화자가 대화하는 대상이 블랙홀입니다.
'별의 조각'과 '하나의 달'의 가사에서는 밤하늘과 우주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다만 따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거나, 본격적으로 과학적 요소를 끌어다 쓴건 아니라서 생략했습니다.
*이하의 모든 내용은 공식적인 해석도 아니고 '꿈보다 해몽'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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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르트 구름
보이저호를 주인공으로 쓴 가사입니다.
경계의 끝자락
내 끝은 아니니까
울타리 밖에 일렁이는 무언가
그 아무도 모르는 별일지 몰라
화자가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경계는...
물론 태양권계면(heliopause)입니다.
태양풍과 성간매질의 압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인데, 이 경계를 넘어가면 태양계를 벗어났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보이저 1호와 2호 모두 태양권계면을 넘어가 태양계 외부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어둠만이 나의 전부였던 동안
숨이 벅차도록 달려왔잖아
해왕성 바깥쪽에는 작은 천체들이 밀집된 구간 '카이퍼 벨트'가 있는데, 그 범위는 대략 태양으로부터 30~50 AU정도입니다.
태양으로부터 약 50 AU를 넘어가면 카이퍼 벨트가 끝나며 천체의 수도 급격히 감소하지요.
현재 보이저 1,2호는 각각 158, 132 AU로 카이퍼 벨트정도는 훌쩍 넘어간지라 정말 캄캄한 어둠속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태양권계면을 넘어간 보이저호가 가장 먼저 만나는 '뭔가 이름 붙어있는 것'이 바로 오르트구름입니다.
장주기혜성이나 비주기혜성이 오는곳으로 추정되는 가상의 구름이에요.
카이퍼 벨트보다 거리도 멀고 밀도도 훨씬 희박할 것이기 때문에 직접 관측되지는 않았어요.
보이저 1호는 300년 뒤에 오르트 구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오르트구름은 사건의 지평선과 함께 최고의 곡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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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별
C/2022YH
발견으로 태어날 테니
이렇게만 적을래
시작부터 굉장히 가사가 비범합니다.
C/2022YH는 사실 혜성의 명명법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참고로 '살별'은 혜성의 순우리말)
주기를 갖는 혜성은 P/, 비주기혜성은 C/로 시작해요.
그 '살별'이라는 것이 윤하 자신이나 노래 자체를 의미한다면, 당연히 앞글자는 C/가 될 수밖에 없겠죠.
2022는 당연히 년도를 의미하고, 원래 YH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알파벳+숫자의 조합이 오게됩니다.
1년을 24개의 반월로 나누어 A부터 Y까지 이름붙이고, 그 반월에 몇번째로 발견되었는지로 살별의 이름을 붙이게됩니다.
뜨겁게 타오를 때에
네 곁에 있을게
이 비행의 끝에서
하나 너의 소원을 들어줄게
아마 그건 네가 가졌던 힘과 용기일 거야
재미있게도 이 곡에 등장하는 천체는 살별 하나뿐이 아닙니다.
'뜨겁게 타오르는'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천체, 바로 별똥별이에요.
살별의 꼬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살별의 머리에서는 먼지와 가스가 분출됩니다.
그리고 살별의 궤도에 남아있던 먼지들 사이로 지구가 지나가면 유성우, 우리말로는 별똥비가 내립니다.
(그림은 페르세우스 유성우)
가장 잘 알려진 페르세우스 유성우도 '스위프트-터틀 혜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문단의 내용이 살별의 가사에 전부 담겨있어요. 이 노래로 지구과학 공부해도 될 정도로 이번 음반에서 가장 과학적인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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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년 230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얘기입니다.
(출처: https://climateclock.world)
이제 많은 분들이 심각성을 느끼고 계시겠지만,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기한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어요.
지구온난화가 임계점을 넘기면 영구동토층에 갇혀있는 이산화탄소까지 전부 공기중으로 퍼지게 되는데,
그 양은 현재 공기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의 두배가 넘는 양이라 더이상 손쓸 방법이 없어집니다.
물론 개개인이 소비를 줄이는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민들이 기후문제를 중요시여긴다는 뜻을 보임으로서 정치인과 정부에서 환경정책을 펼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쿠르트게작트의 영상을 참조해주세요. www.youtube.com/watch?v=1qQN2bPdw2s)
다만 이 노래에서는 기한이 남지 않았으니 절망하라는 비관주의나 직접적으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선전 대신,
그 시간에도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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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R.R.W.
가사를 보고 제일 놀랐던 곡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처음 가사를 읽자마자 든 생각이 이거였거든요.
"이거 열역학 얘기 아니야??"
가지 못해 지난 그 길론
움켜쥐지 못해 흘러버릴 뿐
I won't know what in the world is going on
결국 끝을 향해가는 비극이라도
Walk and knock the door
아무리봐도 열역학 제2법칙에서 소재를 따온걸로 보였거든요.
열역학 제2법칙이란 "고립된 계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며 여기서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값입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일 수는 있어도 그 반대로 가는 일은 없는 것처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은 되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 제목의 첫단어가 Process(과정)이잖아요. 아무리 봐도 노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Tell me how I'm trying to be a piece of me
발맞추는 시간 속에 기록이 있어
The process, result, and the reason why
그리고 가사중에 처음과 현재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떠오른 개념은 바로 '경로함수'
경로함수란, 열역학적으로 상태가 바뀔 때 시작점과 끝나는점 뿐만 아니라 그 경로에 따라서도 값이 바뀌는 함수입니다.
외부에 해주는 '일'이나 받는 '열'같은것들이 바로 경로함수예요.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은 한바퀴 움직일때마다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만, 외부에 해주는 일의 양은 0이 아니잖아요? 그것은 일이 경로함수이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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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건의 지평선
차트를 터뜨린 주인공 사건의 지평선입니다.
연인과의 추억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떠나보내겠다는 내용의 아련한 가사가 일품.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사라진 별의 자리에 잠시 남아있는 빛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건 과학적으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번째는 '별빛은 과거의 빛이기 때문이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 때문에 출발해서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태양의 경우에는 약 8분 20초, 별의 경우에는 아무리 짧아도 몇년에서 길게는 몇만, 몇억년까지.
지금 당장 별이 사라져버리더라도 그 사이에는 우리는 별빛을 보고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보는 별이 과거의 빛이라는걸 생각하면 이쪽도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해석
(행성상성운 NGC 7294)
두번째는 '별이 사라지고 생기는 성운의 빛'
별이 나이가 들면 적색거성으로 바뀌어 팽창하다가, 수명이 다할때 백색왜성이 됩니다.
이때 바깥쪽은 항성풍으로 퍼져나가 성운이 되는데, 이를 '행성상성운'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거대한 별의 경우에는 초신성폭발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때 남은 초신성잔해도 성운이 되지요.
행성상성운이나 초신성잔해는 별의 수명에 비해 아주 짧은 몇만년만 남아있다 흩어집니다.
저는 작사할때 이쪽을 의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뮤직비디오에 별이 폭발해 사라지는 장면이 대놓고 나오거든요.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이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블랙홀의 중력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탈출하기 위한 속도는 광속을 넘어갑니다.
즉 무슨 방법으로도 탈출이 불가능해지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원리적으로 외부에 절대로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재미있게도 외부에서는 블랙홀에 떨어지는 물체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을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물체에서 나오는 빛이 관측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무한히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대신 물체가 사건의 지평선에 무한히 가까워지는 걸로 보이게됩니다.
(반대로, 떨어지는 물체 입장에서는 외부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설명은 복잡하므로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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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hotojournal.jpl.nasa.gov/catalog/PIA22835
https://photojournal.jpl.nasa.gov/catalog/PIA17046
https://news.cgtn.com/news/2020-08-13/Live-Perseid-meteor-shower-creates-dazzling-night-sky-SV0Pj5NBy8/index.html
https://climateclock.world/
https://www.yna.co.kr/view/AKR20201016129100017
https://www.hippie-nerd.de/entropy-explained/
https://physicsworld.com/a/newly-discovered-planetary-nebulae-could-improve-cosmic-distance-measurements/
https://encrypted-tbn0.gstatic.com/images?q=tbn:ANd9GcTn5N7aOxM2erlkrholpQme8xXngjW9yDUQRg&usqp=CAU
https://www.quora.com/What-is-a-Path-function
https://phys.org/news/2013-04-sunlight-earth.html
https://chandra.harvard.edu/blog/node/737
(그 외에 위키피디아의 heliosphere, oort cloud, voyager 1, voyager 2, naming of comets, planetary nebula, supernova remnant 문서 등)
https://m.fmkorea.com/best/5174502792
'유머, 이슈 > 예능,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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